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 추천할게요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에 대한 소개를 시작합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1.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소개

* 백제 문화의 보고, 부소산과 부소산성 *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호),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낙화암(落花巖),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년(동성왕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신라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 문화를 만난다, 부소산의 유적지]
* 삼충사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충사가 있습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

* 영일루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입니다.

* 군창지
일명 만리창(萬里倉)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입니다.

* 수혈병영지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움집이 보입니다.
움집은 백제 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복원한 것으로 1m 가량 움을 파고,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두른 뒤 초가지붕을 얹은 모습입니다.
원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한 곳에 전시실을 지어 구조를 자세히 살필수 있게 하였습니다.

* 사자루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호)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입니다.

* 백화정
낙화암 절벽위에 세워진 육각지붕의 정자가 백화정입니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은 백제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扶風詩社)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다.

* 궁녀사
반월루 광장에서 동북쪽 태자골로 조금 내려가면 궁녀사가 나온다.
이 궁녀사는 백제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은 백제 여인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그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1965년에 세웠다.
10월 백제문화제 때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 부여관북리백제유적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평) 중 33필지 2,102㎡는 1983년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82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여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None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모습

그럼 이제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2.

'서동공원과 궁남지'





서동공원과 궁남지에 대한 소개

* 백제 무왕의 연못, 서동공원과 궁남지 *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만들었습니다는 왕궁의 남쪽 별궁에 속한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무왕 35년(634)에 “궁성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의 연못은 1965~67년에 복원한 것으로, 원래 자연늪지의 1/3정도의 규모입니다.

이 연못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무왕조(武王條)에 "3월에 궁성(宮城)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의 사방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백제에서 왕궁 근처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은 이미 한성시대(漢城時代)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한성시대에 조영된 왕궁에 딸린 연못은 아직 발굴된 바 없어서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웅진(熊津)시대의 왕궁이었던 공산성(公山城) 안에서는 당시의 것으로 판단되는 연못이 왕궁지(王宮址)로 추정되는 건물지(建物址)와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공산성에서 발굴된 이 연못은 바닥이 좁고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원형의 연못인데 직경 7.3m, 바닥직경 4.8m, 깊이 3m의 크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써 보면 백제에서 왕궁 근처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성시대와 웅진시대의 연못은 그 자체만 확인될 뿐 여기에서와 같은 삼신산(三神山)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 궁남지의 의의 *
궁남지의 설화에 나오는 무왕이 서동이라는 것을 미루어 이곳이 별궁터였고 궁남지가 백제 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이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백제의 정원(庭園)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궁남지의 조경(造景)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源流)가 되었습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서동공원과 궁남지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None

서동공원과 궁남지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서동공원과 궁남지 모습

그럼 이제 서동공원과 궁남지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3.

'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





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소개

* 백제의 사찰이 있던 터, 정림사지 *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조각 중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 라는 글이 발견되었습니다.
태평팔년은 요(遼)의 연호(年號)이며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해당됩니다.
이 문자와의 발견수는 이곳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중에 가장 수량이 많았으며 고려 재건시의 정림사를 대표할 수 있는 유물입니다.

 
가람배치형식(伽藍配置形式)을 보면 전형적인 일탑식배치(一塔式配置)로 남으로부터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의 순서로 일직선상(一直線上)에 세워졌으며 주위(周圍)를 회랑(廻廊)으로 구획(區劃)하였습니다.
그러나 특이하게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있습니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절 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33 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있습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장식기와를 비롯하여 백제 벼루, 토기와 흙으로 빚은 불상들이 있습니다.

 
* 국보 제9호로 유명한, 정림사지오층석탑 *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입니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 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 법을 이용하였습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 석탑은 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과 함께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조건물의 가구(架構)를 모방하고 있으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정돈된 형태에서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한 기풍을 풍겨준다.
초층탑신(初層塔身) 4면에는 당(唐)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百濟)를 멸한 다음, 그 기공문(紀功文)을 새겨 넣었으나 이는 탑이 건립된 훨씬 뒤의 일입니다.
이곳 일대의 발굴조사에서 정림사명(定林寺銘)이 들어 있는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None

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 모습

그럼 이제 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4.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에 대한 소개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는 찬란한 백제문화를 둘러볼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7년에 걸쳐 완성한 백제의 문화유산 집합소로서 SBS <런닝맨>에도 등장했습니다.
정우성, 한효주 편의 최종 대결인 경품 몰아주기 레이스가 펼쳐진 곳이 바로 백제문화단지다.
출연진이 연신 ‘너무 넓다’고 고충을 토로했을 만큼 넓다.
전체 면적이 327만 6,000㎡에 달합니다.
그 위에 웅장한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습니다.
백제의 왕실 사찰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습니다.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 마주하는 능사 오층석탑은 단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입니다.
위례성은 한성백제 시기의 성으로 사비궁과는 다른 시대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형루에 올라서면 단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제문화단지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 None

백제문화단지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백제문화단지 모습

그럼 이제 백제문화단지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5.

'낙화암'





낙화암에 대한 소개

* 백제 시대의 전설을 만난다, 낙화암 (백화정)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입니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입니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ㆍ무왕ㆍ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의자왕 20년(660) 사비성은 신라ㆍ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입니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입니다.


낙화암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북포로, None

낙화암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낙화암 모습

그럼 이제 낙화암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6.

'백마강'





백마강에 대한 소개

* 다양한 볼거리가 풍부한, 백마강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처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금강(錦江)의 하류 구간을 일컫는 명칭으로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의 금강을 일컫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백강(白江), 《일본서기》에는 백촌강(白村江)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의 도읍이 들어선 이후로 금강의 역할이 더욱 커졌는데, 특히 백마강은 일본, 신라, 당나라, 서역에 이르도록 문물교역의 큰 길목이 되었던 곳입니다.


* 백마강의 볼거리 *
부소산을 휘돌아 흐르는 백마강에는 백제시대의 중요한 국사를 결정했습니다는 천정대, 낙화암, 조룡대, 조각공원이 있는 구드래, 부산ㆍ대재각, 스스로 따뜻해졌다는 자온대, 수북정 등 발길이 닿는 곳마다, 뱃길이 가는 곳마다 옛 전설이 있습니다.
또한 조룡대는 고란사 아래 백마강가에 작은 섬처럼 있는 바위가 조룡대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를 침공할 때, 강 건너는 것을 방해하던 용을 이 바위에서 낚았습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며, 대재각은 구드래 건너편 백마강가 부산의 절벽에 있으며 그 안에는 자연암반에 '지통재심 일모도원’이라 쓰여진 각서석도 있습니다.


백마강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553, None

백마강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백마강 모습

그럼 이제 백마강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7.

'고란사(고란약수)'





고란사(고란약수)에 대한 소개

*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사찰, 고란사 *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하고 있는 고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습니다.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고란초의 전설이 유명하며, 백마강을 바라보는 주위경관이 비길데 없이 아름답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습니다고도 전합니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합니다.


* 고란약수와 고란초의 전설 *
백제시대에 임금님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습니다.
마침 고란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불렀습니다.
약수를 떠오는 사람들이 고란초의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워 옴으로써 그것이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백제의 임금님이 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리고 사셨다 합니다.
또한, 고란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고란사(고란약수)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25, (부여읍)

고란사(고란약수)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고란사(고란약수) 모습

그럼 이제 고란사(고란약수)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지금까지 충남 부여군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_^


해당 포스팅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일 기준으로 변경되었을 수도 있으며 현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꼭 홈페이지 방문 또는 전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고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