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 추천할게요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에 대한 소개를 시작합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1.

'수락계곡'





수락계곡에 대한 소개

숨겨진 아름다운 계곡, 수락계곡 대둔산 도립공원 내에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와 비경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계곡이 바로 논산시 벌곡면의 수락계곡입니다.
석천암에서 군지계곡을 거쳐 흘러드는 맑은 물은 대둔산 제1의 명물로 한여름에도 차갑게 느껴질 정도이고, 수락폭포(화랑폭포)와 선녀폭포 등 곳곳에 폭포가 있습니다.
계곡에서 대둔산 정상 등반을 위해 절벽 사이에 놓아 만든 가파른 철제 계단은 계곡의 명물입니다.

주변에 관촉사·쌍계사·계백장군묘·충곡서원·개태사 등 문화유적지가 많다.
찾아가려면 논산 시내에서 수락리행 시내버스를 타고, 승용차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서대전인터체인지로 나가 논산 방면 1번 국도를 타고 연산사거리에서 벌곡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벌곡면소재지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조금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계곡 곳곳에 여러개의 폭포가 있어 가을이면 단풍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특히 가을철이면 노랗게 물든 단풍과 푸른 소나무가 기암괴석과 어울려 색조의 장관을 이룬다.
약 60도 경사의 가파른 220철제 계단인 절벽 사이로 길게 뻗어 있는데 이 계단은 대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객들을 위해 암벽 사이에다 설치해 놓은 것으로 수락계곡을 찾아 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오르게 되는 명물로 꼽히는 다리입니다.


*수락계곡의 등산코스
수락계곡의 선녀폭포, 수락폭포, 비선폭포를 거쳐 마천대로 오르는 등산로는 충남지역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수락계곡, 군지계곡에서 정상인 마천대까지는 2시간정도 소요됩니다.


수락계곡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계곡길, None

수락계곡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수락계곡 모습

그럼 이제 수락계곡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2.

'관촉사(논산)'





관촉사(논산)에 대한 소개

* 은진미륵의 미소가 은은한 관촉사 *
충남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에 자리한 관촉사는 논산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관촉사에는 독특한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으뜸은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입니다.
높이 18m의 석불이 온화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백제의 미소’로 표현되곤 합니다.
은진미륵 앞에 선 석등과 오층석탑, 석문 등도 눈여겨볼 것. 불경을 넣어둔 윤장대의 축을 잡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관촉사 앞마당에 서면 풍요로운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관촉사(논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관촉동)

관촉사(논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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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촉사(논산) 모습

그럼 이제 관촉사(논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3.

'개태사(논산)'





개태사(논산)에 대한 소개

* 고려 태조가 삼국 통일을 기려 창건한 사찰, 개태사 *
충남 논산시 연산면(連山面) 천호리(天護里) 천호산에 있는 사찰로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神劍)을 무찌르고 삼국을 통일한 것을 기려 황산을 천호산이라 개칭하고 창건하였습니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창건된 사찰로 그 내역은 《고려사》와 《여지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에 의하면 개태사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후백제를 평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약 4년간에 걸쳐 축조했습니다.
그래서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眞殿)이 있었으며, 국가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이곳에서 신탁(神託)을 받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사운은 쇠퇴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합니다.
즉 고려 말기 잦은 왜구의 침입에 의해 잦은 방화와 약탈을 당하게 되어 조선시대에는 계속 폐사된 채 방치되어 왔는데 1934년에 이르러 오늘날의 사찰이 재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선조시대에는 퇴락하여 폐사로 있던 것을 1930년 김광영(金光榮)이 새로 짓고 도광사(道光寺)로 이름을 고쳤다가 다시 태광사(泰光寺)라고 하였습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19호인 사지석불입상(寺址石佛立像), 충남민속자료 제1호인 개태사철확(鐵鑊), 충남문화재 자료제247호인 5층석탑과 제275호인 석조(石槽)가 있습니다.
예전에 이 절에서 쓰던 철확, 즉 큰 가마솥은 승려들의 식사를 위해 국을 끓이던 것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입니다.


* 개태사지 석조삼존불입상 (보물 제219호) *
개태사 석조삼존불입상은 경내(境內) 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본존불은 높이 4.15m 크기로 복연(伏蓮:아래로 향한 연꽃) 의 방형 기단상에 안치되어 있는데, 중앙부에 만들어진 방형의 불대(佛臺) 후면에 2개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래는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불상의 형태는 크게 돌출된 육계에 둥그런 얼굴을 지니고 있으며, 이마에 백호가 선명하고 이목구비의 형태가 뚜렷하나 얼굴의 규모에 비해 크게 과장된 형상입니다.
불상의 규모에 비해 크게 과장된 듯한 양손은 오른손을 들어 가슴에 붙이고, 왼손은 배에 대어 무엇을 잡은 것처럼 만들었는데, 이로 미루어 본존은 아미타불로 추정됩니다.


좌우의 협시보살은 각각 시무외인, 여원인을 나타내고 있는데, 오른손과 왼손의 위치가 다르게 있습니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보살상은 각각 지름 2m 내외의 팔각형 연꽃 대좌에 올려져 있으며, 높이는 3.12m 내외입니다.
새로이 만들어진 얼굴은 육계가 크며, 본존불보다 더욱 치졸하다.
머리띠 장식은 귀 뒤로 어깨까지 내려져 있으며, 양팔에는 팔찌를 돌리고 있습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양팔에서 좌·우로 늘어져 있고, 배에서 무릎까지 한줄의 매듭장식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문화재현황
개태사지석불입상(보물 219호)
개태사지철확(충남 민속자료 제1호)
개태사지 5층석탑(문화재자료 제274호)
연산화악리의 오골계(천연기념물 제265호)


개태사(논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14-11, (연산면)

개태사(논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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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논산) 모습

그럼 이제 개태사(논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4.

'계백장군 유적지'





계백장군 유적지에 대한 소개

* 계백장군의 얼을 만난다, 계백장군 유적지 *

백제 말기 성충(成忠)·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 3충신으로 꼽히는 계백의 유허지로 최후의 결전장이던 황산벌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반 이상 붕괴되어 내광이 노출되었으며 광벽까지 일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부적면 사람들이 지석(支石)을 안치하고 내광회벽을 완봉한 후 봉분 둘레 47.6m, 지름 15.15m, 높이 6.5m로 복묘하였습니다.
1976년 5월 19일에는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전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고 씌어 있습니다.


* 백제의 마지막 장수, 계백 장군 *

계백(階伯 ; ?~660)은 백제의 장군입니다.
554년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습니다.
641년 의자왕(義慈王)의 즉위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제휴하면서 신라를 자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고립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고구려.백제 두 나라를 노리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습니다.
더욱이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내가 혼란해지고,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정변 등 국내 문제로 백제와의 동맹에 소극적으로 되자 백제의 위기는 점차 현실화되었습니다.
결국 660년(의자왕 20)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炭峴)과 백강(白江)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의자왕은 계백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습니다.
계백은 죽기를 각오하고 출전하여 1당 10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4번을 싸워 이겼으나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습니다.
이 황산벌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했으며, 계백장군은 통한을 품고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계백장군 유적지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None

계백장군 유적지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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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 유적지 모습

그럼 이제 계백장군 유적지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5.

'논산 돈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에 대한 소개

* 김장생을 제향한 서원, 돈암서원 *
돈암서원은 조선 인조 12년(1634) 이곳에서 1.5km 떨어진 숲말에 세워졌었습니다.
현종 원년(1660)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물이 뜰까지 넘쳐들어 오므로, 고종 17년(1880) 현재의 자리인 임리 74번지(서원말)로 옮겨지었습니다.
고종 3년(1865) 서원철폐령에서도 제외된 서원이었습니다.


소슬 3문으로 꾸며진 입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양성당 좌측에 응도당 그리고 사우는 양성당 후면에 있고, 장판각, 정회당, 산앙루가 있습니다.
유림들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에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사우의 전면은 1칸통을 개방하여 전퇴를 두었고,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퇴는 전돌 바닥입니다.


전면 기둥사이에는 사분합 띠살문을 달고 옆면과 뒷면은 회벽입니다.
공포의 구성은 이익공외출목과 동일한 수법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내부의 양봉은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창방 위에 설치된 화반형의 초각반은 기둥 사이마다 1개씩입니다.
지붕가구는 퇴고주를 세워 퇴량과 대들보를 걸었는데 용재는 새우처럼 휘어진 것을 썼다.
대들보 위에 일종의 포대공을 얹어서 퇴고주와 함께 종량을 받쳤으며 다시 종량위에 파연대공을 두고 종도리를 받쳤다.


사우에는 김장생을 주향으로 하여 김집 송준길 송시열선생 등 문묘에 배향된 네 분만을 모시고 있는 보기드문 선정 서원입니다.
돈암서원비문에 의하면 방, 대청, 툇마루, 행랑을 갖춘 응도당이 있었고, 응도당의 왼쪽에 거경제 오른쪽에 정의재가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그 건물이 어느 것인지를 분간하기도 어렵고 원형대로 보존되어 오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 돈암서원의 의의와 평가 *
광산김씨는 연산 지역에서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한 호서 명문 사족가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돈암서원은 서인-노론계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1871년 서원 훼철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보존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특히 김장생이 타계한 후 제자와 문인들이 만든 돈암서원책판(遯巖書院冊版)이 등 여러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돈암서원은 호서 지역은 물론 기호 지역 전체에서 존숭받는 서원으로, 김장생을 제향한 서원 중에서 가장 비중 있고 영향력 있는 서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잘 보호, 관리되고 있으며 지역사를 연구하는 향토 자료로서도 보존적 가치가 높다.
나아가 호서 지역 사림의 동향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며, 당시 실질적인 세력권자인 김장생의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 소유 - 광산김씨 종중


논산 돈암서원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None

논산 돈암서원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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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돈암서원 모습

그럼 이제 논산 돈암서원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6.

'강경 옥녀봉'





강경 옥녀봉에 대한 소개

옥녀봉은 논산 8경 중 하나로, 송재정(정자)과 봉수대에서 강경읍내나 금강을 조망하기에 좋다.
옥녀봉 정자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거칠 것이 없이 훤하고,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부여와 익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평야와 강이 조화를 이루고 저멀리 산이 배경처럼 서 있어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합니다.
옛날 이 산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아주 맑았고,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었으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이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았습니다고 합니다.
 때문에 옥녀봉은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습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옥녀봉 봉수대는 전북 익산 광두원산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 노성봉수로 연락을 취하던 곳입니다.
송재정 바로 아래편에는 국내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터가 자리하고 있어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하다.


강경 옥녀봉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None

강경 옥녀봉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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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옥녀봉 모습

그럼 이제 강경 옥녀봉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7.

'죽림서원'





죽림서원에 대한 소개

1626년(인조 4)에 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세운 황산사(黃山祠)가 그 기원으로, 1665년(현종 6) ‘죽림’이라 사액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이때 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까지 배향하였습니다.
이어 1695년(숙종 21)에는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배향하였습니다.
이곳은 1653년(효종4년) 송시열과 윤선거((尹宣擧)가 만나 주희(朱熹)의 사상을 비판하고 개혁적 사상을 가진 윤휴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곳입니다.
윤휴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사서의 경전을 주희와는 다르게 해석을 내렸는데 주희의 해석만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송시열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때문에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았지만 윤선거는 경전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윤휴의 학문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때문에 두사람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림서원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금백로 20-3, None

죽림서원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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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죽림서원 모습

그럼 이제 죽림서원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지금까지 충남 논산시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_^


해당 포스팅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일 기준으로 변경되었을 수도 있으며 현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꼭 홈페이지 방문 또는 전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고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 추천할게요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에 대한 소개를 시작합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1.

'하늘물빛정원'





하늘물빛정원에 대한 소개

머들령 계곡을 흐르다 장산호수가 태어났고 꽃다지, 산당화, 물속에 우뚝 선 뚝버들의 수목과 야생화들이 수많은 시간들 속에 피고 또 피고 진다.

하늘물빛정원은 전통참숯가마찜질방, 중대형 세미나실 등의 대형공간과 3초 삼겹 전문식당 머들령, 채식뷔페 채담, 이탈리아전통화덕피자&고급 원두전문 카페더밀, 천연발효빵가게 미스터통밀, 허브제품 판매샵, 허브족욕카페, 라이브광장카페, 머들령호떡, 청정지역로컬푸드 등의 편의시설과 편백나무 힐링 숲, 포토존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하늘물빛정원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검한1길 156, None

하늘물빛정원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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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물빛정원 모습

그럼 이제 하늘물빛정원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2.

'남이자연휴양림'





남이자연휴양림에 대한 소개

남이자연휴양림은 레저와 가족단위 체류형 관광의 적합지이며, 활엽수종의 천연림이 울창하여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 그리고 기암절벽과 폭포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인근에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백제시대 성터인 문화재로 지정된 "백령성지"가 있고, 6.25때 치열했던 격전의 흉터를 간직한 "육백고지전승탑"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합니다.
이 때문에 자연경관과 역사적 현장을 함께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휴양림을 감싸고 있는 선야봉(729m)에 오르는 등산로를 갖추고 있으며, 산정에서는 대둔산의 기암절벽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남이자연휴양림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느티골길 200, (남이면)

남이자연휴양림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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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남이자연휴양림 모습

그럼 이제 남이자연휴양림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3.

'대둔산도립공원 (금산지역)'





대둔산도립공원 (금산지역)에 대한 소개

대둔산은 동국여지승람에 씌어있는 바와 같이 진산(珍山)의 진산(鎭山)이며 금산 땅이니 금산의 산이라 할수 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하듯, 대둔산을 주산으로 하는 옛절 태고사도 금산 땅에 있습니다.
비록 대둔산 전체에서 금산이 차지하는 지역의 비중이 작지만 분명 대둔산의 뿌리는 만해 한용운이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는 태고사 자리가 대둔산의 중심지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대둔산 하면 금산의 산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완주군 쪽을 크게 개발하고 사람들을 끌어 들이면서 전북 또는 완주의 대둔산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금산의 대둔산으로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금산ㆍ완주의 대둔산’이라는 공동명의의 산으로 인식을 바꾸어 놓았으면 합니다.
두개의 도립공원으로 되어 있는 산입니다.
군 행정구역으로 볼 때 전북쪽은 완주군 하나의 군구역으로 되어 있으나 , 충남쪽은 금산군과 논산시 두 군의 구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둔산은 기암괴봉들이 많고 그 바위 봉우리들이 수려하며 깨끗하다.
크지 않으나, 장한 맛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습니다.
한 쪽은 숲도 울창하며 계곡도 아름답다.
가을에 단풍이 기암괴봉과 어우러질때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또 임진왜란의 전적지이기도 하고, 천하의 대지에 자리잡고 있는 태고사 절 앞의 암벽에 새겨진 ‘석문(石門)’이란 글은 우암 송시열이 쓴 글자로 알려져 있으며 갖가지 전설도 서려 있습니다.
경관이 수려하고 여러가지로 훌륭한 대둔산은 금산, 논산, 완주 세군이 차지하고 있는 각 지역마다 각각 특색이 있어 재미있습니다.


금산은 임진왜란 전적지와 천하명당인 태고사가 있고, 논산지역은 숲이 좋고 계곡과 개울이 좋으며 완주지역은 기암괴봉이 수풀처럼 서 있고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있습니다.
산길도 진산면 향정에서 오르거나 배티재에서 산비탈을 엇비슷이 가로질러 오르다 태고사에 들른 뒤 낙조대에 오르는 길이 좋다.
논산쪽은 수락리에서 승전탑을 거쳐 수락계곡의 화랑, 금강, 비선 폭포를 보며 196계단을 타고 고스락('정상'을 뜻하는 순우리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고, 완주쪽은 집단 시설지구에서 올라 구름다리 금강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좋다.
안심사에서 깔딱재를 넘어 오르는 길도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 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고 격찬한 대둔산은 정녕 아름다운 산입니다.


대둔산도립공원 (금산지역)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남 금산군 진산면, , 논산시 벌곡면, 전북 완주군

대둔산도립공원 (금산지역)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대둔산도립공원 (금산지역) 모습

그럼 이제 대둔산도립공원 (금산지역)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4.

'적벽강(금산)'





적벽강(금산)에 대한 소개

금강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뜬봉에서 발원하여 유유히 북쪽으로 흐르다가 창남에 들어서서 동남쪽에 물굽이를 틀어 서쪽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에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사이를 뚫고 금강이 흘러 수통리에 이르면 그 앞의 넓은 시야로 좌측으로 기암을 이루는 절벽이 있으니 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을 적벽이라 부르고 그 아래에 흐르는 금강을 "적벽강"이라 합니다.

적벽은 바위산이 붉은 색이란 데서 유래된 것으로 30m가 넘는 장엄한 절벽에는 강물 아래로 굴이 뚫어져 있으며 이 산에는 기화요처가 자리잡고 있어서 더욱 신기한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을에는 불붙는 듯한 단풍이 강물에 투영되어 절경을 이루며 창파에 저녁노을 질 무렵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적벽절경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일품입니다.

적벽 아래 흐르는 금강은 마치 호수와 같이 잔잔히 흐르며 모래사장이 길게 깔려 있어 더욱 운치를 돋군다.
일설로는 중국 양자강 상류에 있는 천의절경 적벽강과 흡사하다하여 적벽, 적벽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고도 합니다.
봄철에 해가 뜨면 춘화가, 여름에는 푸른 소나무 잎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설화가 강물에 비쳐 비단에 수놓은 푸른 물결과 함께 절정을 이루는 적벽강에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배를 띄워 강물을 헤치는 것도 절경입니다.


적벽강(금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None

적벽강(금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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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금산) 모습

그럼 이제 적벽강(금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5.

'대둔산자연휴양림'





대둔산자연휴양림에 대한 소개

계곡이 깊고 산봉우리가 웅장하고 천연활엽수림과 산 중턱 이하의 인공조림지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인근 거리에 대둔산도립공원과 태고사(전통사찰)가 있고,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 확보를 위하여 호남 진출을 노린 왜적을 맞아 이곳 휴양림내 계곡으로 유인, 화공으로 섬멸한 공적을 기리기 위한 이치대첩지가 있으며, 일명 지짐이골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대둔산자연휴양림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6, None

대둔산자연휴양림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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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자연휴양림 모습

그럼 이제 대둔산자연휴양림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6.

'서대산'





서대산에 대한 소개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은 충북 옥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서대산은 금산의 깊은 산중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초기 이전에 서대산에 3개의 서대사가 있어 꽤 알려졌던 모양이며 서대사의 서편 기슭에 있는 현재의 원흥사 터에 서대사가 있었으며 고려말의 고승 취운당(翠雲堂)의 부도 등 큼직한 청석부도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의 여러 절에 옛날 서대사에서 출판한「화엄경」이 많이 있음을 보아서도 서대사가 절도 크고 불사도 활발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의 형태는 땅속에서 그대로 솟아 오른것처럼 보이고 비래산(산맥으로 이어지지 않고 따로 떨어져 독립된 산)에 가깝다.
북쪽으로는 잿말재, 남쪽으로는 비들목재, 남서쪽으로 민재를 지나 산줄기가 이어지지만 그 재들이 낮은데다가 서대산 자체가 워낙 우람하고 높이 솟아있어 주위의 모든 산들을 압도합니다.

산세는 원추형 암산으로 곳곳에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낭떠러지 암반들이 많고 경관이 좋다.
용바위, 마당바위, 선바위, 남근바위, 구름다리, 사자굴, 살바위, 개덕사, 개덕폭포 등이 있고 주릉에는 석문, 견우장연대, 북두칠성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으며, 서대산 정상에 서면 민주지산, 덕유산, 대둔산, 계룡산 및 대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대산의 산길은 모두 가파르지만 암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넘고 돌아오르는 등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산행 중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경관이 좋고 아름다워 산타는 멋에 흠뻑 빠져들게 합니다.


서대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None

서대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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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산 모습

그럼 이제 서대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7.

'천내강'





천내강에 대한 소개

금산에서 동쪽으로 7km 지점에 산과 강, 옛 문화재와 임진왜란의 전적지가 금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곳이 금산의 명승지이며, 사계절 끊이지 않고 관광객이 찾아드는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곳입니다.
천내강은 제원면 저곡리와 개티 건너편의 천내강 사이에 있는 금강상류로, 담수어가 많이 잡히며 천내리 강가에는 고려시대 유물인 용호석(龍虎石)이 280m의 간격으로 서 있고, 강가에는 임진왜란 당시 금산군수로 적을 막다 이곳에서 순국한 권종의 전적비가 옛 격전지에 서 있어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저곡리 갯벌 옆산은 그 이름이 봉황대(鳳凰臺)로 강을 향해 높이 솟아 있어, 옛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습니다.
이 산마루에 봉황대라는 정자가 있어 찾는 사람의 좋은 휴식처가 되었습니다고 전하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고 저곡리 뒷산에는 임진왜란 때 쌓은 성터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천내강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None

천내강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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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내강 모습

그럼 이제 천내강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지금까지 충남 금산군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_^


해당 포스팅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일 기준으로 변경되었을 수도 있으며 현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꼭 홈페이지 방문 또는 전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고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 추천할게요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에 대한 소개를 시작합니다.

아래 순위는 한국관광공사의 인기도 순위를 참고하여 추천드리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1.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대한 소개

* 백제 문주왕 시절의 산성, 공산성 *
공주 시내 산성동에 있는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1년(475)에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습니다가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성입니다.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의 요지입니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래는 백제시대의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다시 쌓은 것입니다.
성 안에는 웅진 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연못 2개소, 고려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 있습니다.

동문과 서문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주변에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공산성은 역사와 문화가 함께 정이 깃든 수려한 자연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있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가족 단위, 부부, 연인들이 금강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산책할 성벽길이 있고 우거진 숲과 숲사이의 산책로가 있습니다.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단결 같은 금강이 발 아래에서 찰랑거린다.


* 공산성의 유래 *
공산성은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475년(문주왕 1) 한산성(漢山城)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였습니다가, 538년(성왕 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습니다.


* 공산성 서쪽에 위치한 정각, 공산성 쌍수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9호/1984.05.17 지정) *
쌍수정은 공산성 진남루 부근의 서쪽 고지대에 위치한 정각입니다.
원래 그 터는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공산성 파천시 머물렀던 장소이며, 이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인조는 환도시 쌍수에 정3품 대부작을 하사하였는데 그 후 나무는 죽고 구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유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관찰사 이수항이 영조 10년에 쌍수정을 건립한 것으로 전합니다.
그 후 정조 11년, 고종 7년, 1947년에 걸쳐 중수되어 오다가 1970년에 건물은 전면 해체되고 새로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복원된 쌍수정의 건물은 본래의 형상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건물은 이층의 누각이며 누각 주변에 담장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지금의 건물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익공 계통의 건물로 조선 후기 전형적 누각의 형상을 모방하고 있지만, 원형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 공산성의 남문, 공산성 진남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1984.05.17 지정) *
공산성의 출입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이 진남루는 성의 남문이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습니다.
높은 석축기단을 좌우로 대칭시켜 조성한 후 두 석축 기단에 걸쳐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원래 토성이었던 공산성이 지금과 같은 석축성으로 개축된 것은 조선 초기의 일로 이 진남루 역시 그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 후 여러 차례 수축되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건물은 1971년 전부 해체하여 복원한 것입니다.


*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 공산성 추정왕궁지 *
공산성 내 서쪽의 표고 85m의 정상부, 종래 쌍수정 광장으로 불려 왔던 약 6,800㎡의 면적이 추정 왕궁지입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임류각은 궁의 동쪽에 건립되었습니다고 기록되어 있어 1980년에 조사된 임류각지에서 서쪽으로 왕궁이 입지할 수 있는 위치는 이 곳 밖에 없다는 논거로 1985년부터 1986년에 걸쳐 조사되었습니다.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유적은 건물지를 비롯하여 용수를 저장할 수 있는 연못과 목곽고 및 저장구덩이 등이 확인되었고 이들 유구나 또는 출토된 유물들이 백제시대로 편년되어 왕궁지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습니다.
확인된 건물지로는 반지하식 건물지, 굴건식 주공을 사용한 건물지, 적심석을 사용한 건물지 2개소와 연지, 저장혈, 목곽고 등이 있습니다.

건물지는 굴건식 건물지까지는 백제가 웅진으로 남천하기 이전의 유적으로 보고 적심석을 사용한 건물지는 남천 후, 즉 왕궁지의 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적심석 검물지는 각각 24칸, 10칸 규모였다.
수습된 유물은 대체로 기와류인데 막새기와는 백제의 8엽, 10엽 연화문을 비롯하여 파상문 수막새 기와이고, 10엽 연화문 수막새 기와는 연꽃의 끝부분 반전이 심하게 이루어진 백제 초기의 것으로 공주 공산성에서 주로 출토되는 전형적 형식입니다.
이외의 평기와 중에는 웅천(熊川) 혹은 관(官)자의 명문이 찍힌 것을 비롯한 각종의 도장문이 나왔다.
토기는 백제토기로 등잔을 비롯하여 개물이나 삼족토기 등이며 특수 유물로 봉황형 금동향로가 수습되었는데 이는 부식이 심하고 출토 위치가 불분명하지만 조사된 건물지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공산성의 북문, 공산성 공북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1976.01.08 지정) *
공북루는 공산성에 설치된 문루 중 북문으로 성문을 나서면 나루를 통하여 금강을 건너게 되어 있습니다.
선조 36년인 1603년에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시축 후 수 차례에 걸쳐 개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나 현존의 것은 본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문루 건축의 대표적 예로 꼽습니다.
건축의 내용은 <<여지도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동성의 충청도 편에 보면 1603년인 계묘년에 쌍수 산성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공북, 진남 양문을 건립한 내용을 적고 있어 현존의 공북루 건물의 축조에 대한 기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본래 현존 공북루의 자리는 망북루가 자리하였던 것으로 전합니다.
그러나 유지는 공북루의 동쪽 성벽상에 초석의 일부만 남아 있을 뿐, 외형은 확인하기가 어렵다.
망북루의 초석은 자연석으로 4매가 지표면에 남아 있지만 이것만으로 건물의 형상을 복원하기는 어렵다.
성문의 건축은 협축형태로 조성된 석성이 절단된 후면에 이층의 누각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면 5칸에 측면 3칸으로 면적은 남문인 진남루의 2배 가량이며, 고주를 사용한 이층의 다락집 형태로 고창 읍성의 공북루와 유사한 모습입니다.
각 문의 크기는 등간격이며 누의 중앙 어칸에는 출입문을 달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근세까지 문비가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백제시절의 누각터, 공산성 임류각지 *
임류각지는 공산성의 산정에 위치한 광복루에서 서쪽으로 약 150m 정도 떨어진 산의 중턱 서향 사면에 위치합니다.
임류각은 삼국시대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후, 약 25년이 지난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 (493)에 축조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이 남아있는 건물입니다.
1980년의 조사에서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조사된 유지는 정비되어 있으며, 건물의 문화적, 학술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본래의 유지에서 약간 위쪽에 새로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임류각에 대한 조사 결과 초석의 배열은 남쪽열에 6매, 동쪽열에 7매를 배치하여 건물은 남변이 5칸, 동변이 6칸이지만 각각 10.4m ×10.4m의 정방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건물에 사용된 초석은 총 42매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초석은 31매이고 나머지 11매는 결실되어 있습니다.
초석의 기본형태는 방형이나 2∼3매의 돌을 합하여 1개의 초석을 이루고 있으며, 고층건물을 세우기 위한 방법으로 초석의 상면에 요철을 주어 기둥이 힘을 받고 밀착되도록 하는 소위 그랭이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기반이 약한 초석 주위에는 굴건식 원형 주공을 만들어 보조 기둥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임류각지의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와가 대부분으로, 단판 8엽의 백제 연화문 와당과 후대의 세판 연화문 와당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현재 임류각지는 초석을 지상에 노출시키면서 정비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불어 임류각에 대한 복원도 이루어져 정면 6칸, 측면 7칸의 이층 형태의 누각 건물이 광복루 아래 광장에 복원되어 있습니다.


* 공산성의 동문의 터가 있는 곳, 공산성 동문루 *
공산성 중심부에서 남동방향으로 토성이 위치하였는데 본래 여기에는 공산성의 동문이 있었으나 훼손되어 단지 유지만 남아 전하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폭 5m 정도의 토성이 절단된 형태로 남아 있었는데, 1980년에 문지가 조사되어 구체적 형태가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조사된 문지의 내용을 보면 규모는 문지의 통로길이가 6.54m이고 너비가 2.46m로 남아 있었습니다.
문지의 양쪽에 문지석 2매가 원위치에 남아 있었고 자연석으로 쌓은 통로벽도 원상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2매의 문지석의 상면에는 문설주공이 장방형으로 길이 15㎝, 너비 5㎝, 깊이 5㎝로 파여 있었고, 그 문설주공의 바로 안쪽에는 원형으로된 분지공이 있었는데 지름이 11㎝에 깊이는 7㎝였다.
이러한 크기와 모양은 양쪽의 문지공에서 동일한 것이 었습니다.
다만 서쪽 문지공의 바닥에는 문초곶이의 마멸방지를 위하여 설치된 무쇠받침도 남아 있었습니다.
문지석의 전면에는 장대석을 높이대로 놓고 그 위에 큰 면석 하나를 포개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큰 면석을 서쪽에 똑같이 쌓은것은 밖에서 문을 열지 못하게 한 성문의 공통적 형식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지석 양끝에 접해서 통로벽을 쌓았습니다.
현재 이 공산성의 동문은 정비와 함께 문루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문루는 조선시대 성문의 일반적 형식에 따른 것이며 규모는 기록에 남아있는 삼칸규모라는 내용에 맞추어 건립한 것입니다.


* 공산성 내 연못, 공산성 만하루와 연지(공주공산성연지 - 충청남도 기념물 제42호/1982.12.31 지정) *
연지는 공산성 북쪽의 금강과 영은사(靈隱寺)사이에 있는 연못입니다.
공산성에는 우물이 3개 있었습니다고 전해지나 이곳과 쌍수정(雙樹亭)남쪽의 것 2개만 확인되고 있습니다.
발굴전까지는 흙으로 덮여 있었으나 1982년부터 1983년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확인. 정비한 것입니다.
금강 가까이에서 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지형상의 조건을 이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연못의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단을 쌓았으며 수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북쪽과 남쪽에 계단 시설을 하였습니다.
연못의 축석상태를 보면, 모두 단을 두어 쌓았으며, 전체적인 모습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입니다.
아울러, 축석에 사용된 석재는 비록 정치석되지는 않았지만, 면을 어느 정도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이들의 축조는 매우 정연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석질은 절석이 잘도는 반암계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공산성 연못 *
연못은 광장의 전면 남쪽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면을 깊게 파고 그 안에 자연석을 원형으로 쌓아 만든 것입니다.
규모는 상면의 너비가 7.3m이고 바닥의 너비가 3.0m에 깊이는 4.18m입니다.
전체적인 형상은 대접형으로 정연한 축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원상을 유지하고 있던 것입니다.
축조를 보면 부식된 화강암질인 생토면을 지름 9.5m되게 원형으로 파고 내부에 석축을 한 것입니다.
더불어 바닥은 널찍한 판석을 깔았는데 호안석면은 부정형 할석을 연못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1열만 축조한 것입니다.
특히 벽면은 위로 쌓아 올리면서 약간 밖으로 휘어 올려 지름이 위로 올라갈수록 넓게 배려한 것입니다.
한편 호안석의 후면은 점성이 강한 점토를 1m의 너비정도 채우고 있는데 연못 외변이 동일한 상태입니다.
이는 연못 내의 물이 누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 연못은 추정왕궁지역의 중앙에서 남쪽으로 치후쳐 있으면서 중심건물로 추정되는 24간 건물의 정면 중앙에 자리합니다.
따라서 외형상으로는 조경을 위한 시설인 것으로 추정되나 또다른 기능, 즉 용수 저장을 위한 시설이 아닌가 추정되기도 합니다.
이는 연못 내의 용수는 외부에서 길어다 채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연못 안에서 흙이 완전하게 채워져 있으면서 기와나 토기 등의 각종 유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 바 유물들은 전부 백제시대의 것입니다.
기와는 평와를 비롯하여 숫막새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는데 숫맛새 기와는 단판 10엽 연화문 와당을 비롯한 8엽연화문, 그리고 파상문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연화문 와당은 소판이지만 연판의 반전이 심하고 연판 자체는 풍만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것입니다.
파상문 숫막새 기와는 양선으로 만든 것과 막새면에 볼륨을 둔것으로 구분되는데 소박하지만 균형과 유려한 멋을 갖추고 있는 것들이 출토되었습니다.
토기는 병형토기를 비롯하여 삼족토기, 개물, 등잔 및 벼루 등이 있는데 이들은 백제토기로 정형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병형토기는 표면에 자연 유가 있는 평저의 기형인데 광견형으로 분류되는 것들입니다.
벼루는 소형의 원판형에 다리가 3개 부착된 것입니다.


* 공산성 동쪽의 누각, 공산성 광복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1984.05.17 지정) *
광복루는 공산성의 동쪽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는 누각입니다.
이 곳은 공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토성이 겹성으로 위치한 곳인데 공산성 두 개의 봉우리 중 서쪽의 봉우리에는 쌍수정이 있고 동쪽의 봉우리에는 광복루가 있으며 공산성의 가장 고지대에 위치하여 사방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현재 광복루로 불리는 건물은 원래 해상루라 하여 성 내의 중군영<中軍營>의 문루였으나, 중군영이 폐쇄되면서 중군영지에 있던 것을 일제 초기에 옮겨 웅심각<雄心閣>이라 불렀으며, 1945년에 퇴락한 누각을 공주의 주민이 합심하여 다시 보수하였고, 이듬해 4월에 김구, 이시영이 이 곳에 이르러 누각에 국권회복의 뜻을 기념하는 광복이란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누각 명칭이 개칭되었습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각지붕 초익공 양식으로 창방을 각 칸마다 우미량과 함께 깎아내어 장식적 효과를 내고 있음이 특이하다.
8각의 고준한 화강암 주초 위에 고주를 올렸으며 지붕은 홑처마로써 네 귀퉁이를 반전시킴으로써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공산성의 서문,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서문지) *
서문은 본래 유지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 문루와 함께 새로운 형태로 문루의 복원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복원된 문루는 공산성 서쪽 성곽선에 연결되게 성선을 연결하면서 성의 입구를 개구식으로 내면서 그 위에 문루를 올린 상태입니다.
더불어 본래의 문지는 성내의 출입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복원된 문루는 외형만 겸비하고 출입시설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본래 공산성 서문 문지의 복원은 이미 1975년에 성곽에 대한 보수공사를 겸하여 실시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1975년의 보수에서는 양단의 기단만 축석하였을 뿐 누적은 복원되지 않은 채 남겨 놓았었습니다.
당시 복원된 기단부는 높이 4.4m, 너비 5-6m, 그리고 길이는 각각 17m로 조성하였는데 좌우 양단간의 간격은 7m의 범위였다.
본래 서문지의 형태는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
문의 형태에 대하여 <여지도지>에서는 동,서문은 각각 3칸이란 기록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서문지의 복원은 1990년에 이르러 본래의 문지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3칸 규모의 고주 형태의 문루가 축조되었습니다.
비록 최근에 새로이 조성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문루 양식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로 280, (금성동)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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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모습

그럼 이제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2.

'동학사(공주)'





동학사(공주)에 대한 소개

* 계룡산의 대표 산사, 동학사 *

동학사는 공주에서 약 25km, 대전에서 8km정도 떨어진 반포면 학봉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계룡산 동쪽 골짜기에 싸여 있는 천년고찰 '동학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비구니 강원(일명:승가대학)으로서,150 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의 일대시교 및 수행과 포교에 필요한 제반교육을 받으며 정진하고 있는 유서깊은 도량입니다.
또한 동학사는 문필봉(文筆峰)이 있어서 대 강 백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도 유명하며 비구니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는 맑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하나로 어우러져 고즈넉한 산사에 그 청아함을 더해준다.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고 교통이 편리해 계룡산의 관광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특히 박정자삼거리에서 동학사에 이르는 약 3km 거리의 가로수는 벚나무로 이루어져 봄이면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93년부터 매년 동학사 봄꽃축제가 개최됩니다.


* 동학사의 역사 *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상원조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곳에 회의화상이 창건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했었습니다.
고려 태조 3년(920)에 도선국사가 왕명을 받아 중창하였는데,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을 기원했습니다해서 '원당'이라고도 불리우다가 그 후 영조 4년(1728) 신천영의 병화로 사원이 전소되어 80여년 동안 빈 절터인 채로 내려오다 이조 순조 14년(1814)에 금봉화상이 옛 원당터에 실상암을 짓고 절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개칭하되,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하여 "동"자를 따고 사판국청학귀소형(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 "학"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습니다는 설도 있고, 또 계룡산 동쪽 사찰 입구에 청학이 깃들었습니다는 학암(鶴岩)을 위주로 하여 동학이라는 절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 뒤 고종 원년(1864)에 만화화상이 개창하였고, 그의 제자인 경허성우 스님이 고종 8년(1871)에 강의를 열었으며 1879년에는 이 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근대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절의 건물이 전부 불타 없어졌다가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으며, 지금도 일주문 불사 및 상원암(옛 계명장사로 남매탑이 있는 곳) 복원불사가 진행중입니다.
현재 전각으로는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을 비롯하여 조사전, 육화당, 강설전, 화경헌, 엽화실, 실상료, 숙모전 등이 있습니다.
신내암자로는 미타암, 길상암, 관음암, 문수암, 심우정사, 상원암 등이 있습니다.


* 동학사의 문화재 *

- 동학사 삼성각 (문화재자료 제 57호) 칠성, 산신,독성의 삼성을 모신 곳입니다.
가운데 칠성, 왼쪽에 산신, 오른쪽에 독성탱화를 모셨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독성은 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입니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산악 신앙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는데 재물을 담당합니다.
각각 도교, 불교, 토속신앙의 한 표현으로,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요소가 합쳐진 형태입니다.
불교 이외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이름을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하였습니다.


-건축물
동학사에는 다른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이 있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동학사 경내에 들어서려면 두 기둥이 우뚝한 홍삼문을 볼수 있는데, 이는 궁궐, 관아, 능, 묘, 원 앞에 세우는 문으로 사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30자 이상의 홍살문입니다.
이것은 동학사가 사원이면서도 경내에 유신의 사당인 동계사, 그리고 삼은각과 숙모전이 있는 점들과 상호 연관된 인연들이 어우러져 세워진 것입니다.


1) 동계사 : 신라 멸망 후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이 태조19년(936)에 이곳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박제상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동계사를 짓고 제사를 지내다 병화를 만나 전소되었습니다가 1956년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2) 삼은각 : 이태조 3년(1394)에 야온 길재가 동학사에 와서 박제상을 모신 동계사 전에 단을 설치하여 포은 정몽주를 위해 제사지내고 5년후(1399) 유방택이 목은 이색을 모시고, 후에 야은을 모신 곳입니다.


3) 숙모전 : 매월당 김시습의 충절과 애통함이 깃들인 곳입니다.
매월당은 당대 걸승으로서 생육신 한 분입니다.
세조 1년 거지꼴의 한 승려가 삼온각에 엎드려 통곡을 하고 있었는데, 이 거지 승려 매월당은 단종이 숙부(세조)에게 왕위를 박탈당했습니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후 여기에와 그들의 혼백을 붙들고 통곡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세조2년 사육신이 참수를 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다시 돌와와 초혼각을 짓고 충정를 기렸다.
세조는 그 후 우연히 이곳에 들렀습니다가 그러한 내력을 전해 듣고 자기로 인하여 죽음을 당한 280명의 이름을 열거해 초혼각에 모시도록 했습니다.
이 초혼각은 영조 때 전소되어 혼기를 잃어 58위만 봉안하고 고종때 중건하여 고종으로부터 숙모전이란 사액을 받았습니다.
그 후 26위를 추가해 현재 89위만 봉안되어 있고 음력 3월 보름과 10월24일에 추모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동학사(공주)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 (반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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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공주) 모습

그럼 이제 동학사(공주)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3.

'갑사계곡'





갑사계곡에 대한 소개

* 계룡산 계곡 중 가장 빼어난, 갑사계곡 *
계룡산국립공원에 있는 7개의 계곡 중 가장 빼어난 갑사계곡은 한여름에도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시원하다.
가을에는 "춘마곡 추갑사"라고 할 정도로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특히 5리숲이라고 불리는 갑사 진입로는 가을이면 단풍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장관을 이룬다.
사찰 입구에 철당간지주, 부도, 동종 등 문화 자원이 많이 있습니다.
용추교에서 용문폭포 구간은 탐방로와 계곡이 인접해 있어 산행 시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어 1일 산행코스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사찰, 갑사 *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진 계룡산의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절입니다.
공주에서 19km 떨어져 있고, 동학사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면 갈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암시해주듯이 갑사의 가을 단풍은 더없이 아름답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습니다.
갑사는 계룡갑사,갑사,갑사,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워 왔으며, 통일신라 화엄종 십대사찰의 하나였던 명찰입니다.


갑사계곡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225, None

갑사계곡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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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계곡 모습

그럼 이제 갑사계곡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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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4.

'갑사'





갑사에 대한 소개

*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는 사찰, 갑사 *
노송과 느티나무 숲이 우거진 계룡산의 서북쪽 기슭에 위치한 절입니다.
공주에서 19km 떨어져 있고, 동학사에서 도보로 3시간 정도면 갈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암시해주듯이 갑사의 가을 단풍은 더없이 아름답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하였습니다.
갑사는 계룡갑사, 갑사, 갑사사, 계룡사 등으로 불리워 왔으며, 통일신라 화엄종 십대사찰의 하나였던 명찰입니다.

갑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으뜸간다'고 해서 갑등의 이름으로 갑사가 되었습니다고 전합니다.
이름대로 하면 첫째가는 절인 것입니다.
조선 세종 6년(1423)에 일어난 사원 통폐합에서도 제외될 만큼 일찍이 이름이 났던 절이었으며, 세조 때에는 오히려 왕실의 비호를 받아 '월인석보'를 판각하기도 하였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시 전소되었으며,선조37년 (1604)대웅전과 진해당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절 주위에는 용문폭포, 수정봉, 천진보탑, 군자대 등 수려한 경승이 줄지어 있으며 특히 남쪽 계곡은 이른바 9곡을 이루어 절경을 이룬다.


* 대웅전
도지정유형문화재 제105호 이 건물은 갑사의 본전으로,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37년(1604)에 중건하였고, 고종 12년(1875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위치는 원래 현재의 대적전 부근에 있었으나, 다시 세울때에 현재위치로 옮겨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 갑사 강당
도지정유형문화재 제95호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계룡갑사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가구에 기교를 부리지 않은 웅장한 조선시대 건축물입니다.


* 갑사 공우탑
이 탑은 대웅전에서 대적전에 이르는 개울 건너 계곡변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 갑사의 부속 암자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탑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신의 1층에는 탑의 건립내용이, 2,3층에는 탑명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탑의 건립은 옥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시에 큰 공을 소로 인해 이루어 졌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명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니 인도(人道)에 우연히 합치되었네. 세 번을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라.'

* 갑사 동종
보물 제 478호 이 종은 갑사 해탈문을 지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새로 지은 사모지붕의 종각안에 있습니다.
몸체에는 명문이 있어 조선 선조 17년(1584)에 만들었음과 갑사의 절이름도 당시는 갑사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의 크기는 총 높이가 127cm, 입지름이 91.5cm 입니다.
종의 크기는 총 높이가 일제강점기 헌납이란 명목으로 공출해 갔다가 해방후 되찾아 온 민족과 수난을 같이한 범종입니다.
1584년(조선선조 17년)에 만든 종이며,신라 이래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소리가 울려 나가는 용통이 없는 등 조선시대의 특징도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용뉴(종을 매는 고리)에 새겨진 사실적인 용의 모습, 어깨부분에 붙여 놓은 9개의 윤곽(젖꼭지 모양의 장식), 연꽃 형상의 당좌(종을 쳐 울리는 부분) 등은 신라 이래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요소입니다.
당좌 사이에는 비처낭 대신 지장보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종의몸체에 만든 시기를 표시한 명문이 있어,우리나라 종의 변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갑사사'라는 표기가 있어 절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던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 제 256호 갑사 철당간은 당을 다는 철깃대와 기둥입니다.
당간은 절 앞에 세우는 깃대인데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기능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이며, 당간지주는 당간을 좌우에서 지탱하기 위한 버팀 기둥을 말합니다.
갑사 철당간은 지름 50센티미터의 철통 24개를 이어 놓은 것으로 당간의 높이는 약 15미터입니다.
그러나 1893년에 4개의 철통이 부러져 처음보다 낮아졌다.
이 철당간·지주가 만들어진 시기는 갑사가 신라 의상대사가 일으킨 화엄종 10대 사찰 중 하나였다는 점과 받침돌 측면에 새겨진 안상조각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됩니다.
갑사의 철당간 지주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당간 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문화재 정보]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 256호), 공주 갑사 승탑(보물 257호), 갑사삼신괘불탱(국보 298호), 갑사동종(보물 478호), 월인석보목판(보물 582호), 갑사석조약사여래입상(충남 유형문화재 50호), 갑사석조보살입상(충남유형문화재 51호), 갑사사적비(충남유형문화재 52호), 갑사강당(충남유형문화재 95호), 갑사대웅전(충남유형문화재 105호), 갑사대적전(충남유형문화재 106호), 갑사표충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2호), 갑사삼성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3호), 갑사팔상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4호), 천진보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68호)


갑사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계룡면)

갑사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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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모습

그럼 이제 갑사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5.

'마곡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마곡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소개

* 여러 시대의 불교 유산이 있는 곳, 마곡사 *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고, 순각(淳覺)이 보수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靈山殿)’이라고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습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801)·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802)·영산전(보물 800)·사천왕문·해탈문(解脫門) 등이 있을 뿐입니다.
이 밖에 사보(寺寶)로는 5층 석탑(보물 799)·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62),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 향로(지방유형문화재 20)가 있고,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270)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이 있습니다.

금물이나 은물로 베껴 쓴 필사 불경들이 지금도 여러 점 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려후기 불교문화의 대표적 유산이기도 하다.
이 절과 관련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일대가 조선조 십승지지, 즉 전란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마곡사는 임진왜란의 전란을 피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도 병화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전합니다.


* 마곡사의 역사 *
마곡사의 이름은 신라 보철화상이 설법 전도할 때 모인 신도가 삼밭의 삼대 같다고 하여 마곡사라 지은 것이라 합니다.
절에서 내려오는 얘기로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고려 보조국사가 재건하였습니다 하나, 그 처음 연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고 전하는 연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선덕여왕 12년은 백제 멸망이전 백제 의자왕 2년에 해당합니다.

만일 642년 창건이 사실이라면, 의자왕 2년으로 전해져야 하는데 적대관계의 신라 연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재 정보]
마곡사5층석탑(보물 799호) / 마곡사영산전(보물 800호) / 마곡사대웅보전(보물 801호) / 대광보전(보물 802호) /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1(보물 269호) /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권6(보물 270호) / 천왕문(문화재자료 62호) / 응진전(문화재자료 65호) / 명부전(문화재자료 64호) / 동제은입향로(문화재자료 20호) / 해탈문(문화재자료 66호) / 동종(문화재자료 71호) / 심검당 및 고방(문화재자료 135호) / 국사당(문화재자료 63호) / 세조대왕가마(문화재자료 14호) / 괘불(문화재자료 345호)  


마곡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사곡면)

마곡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큰지도 보기를 누르시면 구글맵에서 더 크고 정확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마곡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모습

그럼 이제 마곡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6.

'금강온천'





금강온천에 대한 소개

* 가족 단위의 여행객에게 좋은 금강온천 *

금강온천은 지하 1300m 암반수에서 용출하는 양질의 온천수로 약칼리성 단순천이며 수질은 무색, 무미, 무취의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되어 피부노화 방지, 만성 신경계통 류마티스 관절염, 당뇨병, 부인병 및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습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강온천은 대형 온천 시설과 숙박 시설이 함께 있어 공주를 관광하는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이 있습니다.


금강온천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고마나루길 51-12, (웅진동)

금강온천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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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온천 모습

그럼 이제 금강온천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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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7.

'계룡산도예촌'





계룡산도예촌에 대한 소개

* 철화분청사기의 맥을 잇는 계룡산도예촌 *
상신리는 마을 중간에 위치한 규모가 큰 당간지주를 통해 이곳이 통일신라에 지어졌던 구룡사지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직도 돌담길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상신리 주변의 반경 7km 이내에는 도자사에 있어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 일본의 도조 이삼평공의 비가 세워져 있고 조선 초에서 중기까지 오직 이곳에서만 생산된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의 생산가마인 사적333호 가마터가 있습니다.
도예촌 형성은 전승복원을 목적으로 하여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자 문화 창출지로서 발전시키기 위해 추진되었습니다.
1993년 5월부터 입주자가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여 현재 12명의 도예가가 모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계룡산 도예촌은 자연발생지가 아닌 동시 일괄적으로 입주한 전국 최초의 도예촌이 된 것입니다.

계룡산도자예술촌은 5천여평 규모에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30대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도예인 18명이 뜻과 힘을 모아 형성한 공동체 마을입니다.
1993년 입촌한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과 도자기 캠프를 운영하면서 점차 계룡산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계룡산 도예촌의 작가들은 지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철화분청사기의 전승복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교육산실의 현장으로 자라나는 새싹에게 정신적인 문화와 우리지역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 프로그램과 기업체나 단체의 문화활동으로서의 도예문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계룡산도예촌은 옛 것을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조형개념을 도입하여 개인의 작품 및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생산품은 항아리, 다기도구일체, 화병, 벽걸이, 물잔, 목걸이, 손도장찍기, 인형만들기, 필통, 촛대, 연적 등입니다.


계룡산도예촌 위치 및 가는길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도예촌길 71-25, None

계룡산도예촌의 위치는 위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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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대중교통 정보와 경로 확인은 다음지도과 네이버지도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계룡산도예촌 모습

그럼 이제 계룡산도예촌의 풍경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기로 해봅시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지금까지 충남 공주시 놀러갈만한 곳 7가지 관광지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_^


해당 포스팅의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를 참고로 작성되었습니다.

작성일 기준으로 변경되었을 수도 있으며 현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꼭 홈페이지 방문 또는 전화를 통해 확인해보시고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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